불화하는 몸들의 상황극장

 

                                                                                                                                                            이은정 (문예미학자)

 

이민호의 작업은 불안한 듯 배회하는 익명의 신체, 불편함이 느껴질 만큼 노골적으로 화폭을 채운 주름진 살들과 절단된 신체 부위들을 통해서 시대와 불화하는 몸을 담아낸다. 그것들은 더 이상 어떤 개별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기호도 찾아볼 수 없는 벌거벗은 몸들, 그림자 외에는 어떤 것도 갖지 않는 단절된 몸들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이민호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고 주위세계가 단절되었으므로 자신과 대면하는 것 외에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시간들을 마주해야 했다.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자유의 시련, 관계의 공백 속에서 이민호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déclasser’라는 단어와 비정형(informe)이라는 개념을 붙들었다. 바타이유는 비정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정형이란 특정한 의미를 제공하는 하나의 형용사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이 각자의 형태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세계로부터 이탈하도록(déclasser) 해주는 하나의 용어이다.” ‘déclasser’는 자격을 취소하는 것, 사회적 지위에서 낙오되는 것, 자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이민호는 유학생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서 일상과 불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기호를 보게 되었으며, 비정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물의 고유한 형식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에로스나 아름다움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날것으로서의 몸, 그저 현존하는 것 외에는 세계와의 어떤 동거도 거부하는 날것으로서의 몸에 대해서 오랜 시간 천착했다. 그의 작품들은 몸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끈기 있게 고유성들을 벗겨내고, 살갗과 근육들, 움직임과 동작이 스스로 풀려나도록 조건과 상황을 반복적으로 변화시킨다. 아주 미세하게 조건들이 변화되고 그 조건들에 맞추어 몸들이 반응하도록 놓아둔다는 점에서 매번의 작업은 하나의 상황극장이 된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분투는 2차원의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것, 즉 살갗의 색에서 이루어진다. 회화는 부드러움과 따듯함이라는 붓질의 속성을 담고 있지만 사진은 날카롭고 차가운 이미지를 만든다. 회화는 몸의 리듬을 따라서 움직이기에 대상보다는 작가 자신에게 충실한 반면, 사진은 정교하게 계산된 설정값에 따라 피사체를 담아내기에 대상 자체만을 기계적으로 지시한다.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들의 대립은 당연히 불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민호는 이 불화를 봉합하기보다는 싸움을 계속하도록 형상에 그대로 노출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날것으로서의 몸이 지니는 어떤 파열을 담아냄으로써 그것과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게 된다. 자기 동일성으로 회귀하지 않는 분열된 형상들은 그래서 사회적 가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리를 박탈당한 어떤 몸들이 존재한다는 것, 아무런 본질도 기입되지 않은 채 다만 바깥을 향해서 열려있는 몸이라는 순전한 현존이 우리 자신으로 우리 앞에 존재한다는 것을 고지하게 된다. 이민호는 이 번 전시에 정지돈의 소설집 제목을 차용한 <내가 싸우듯이>라는 제목을 제시했다. 작가 자신과의 싸움, 작업과의 싸움, 과거와의 싸움, 지금과의 싸움, 세계와의 싸움, 무수한 몸들과의 싸움 등, 무한히 열거 가능한 이 싸움은 그가 오랜 시간 싸워 온 작업행위들의 흔적들이다. <Portable Landscape> 시리즈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이민호는 사진작업을 통해 익숙한 장소와 일상적인 사물들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함으로써 ‘낯설면서도 친숙한’ 공간을 새롭게 열어내는 것들에 오랜 시간을 바쳤다. 한 번의 행위가 그 다음 행위의 원인으로 이어져 하나의 길을 만들 듯이, 사진매체는 그의 주된 장르가 되었으며 낯선 사물들의 공간은 그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이 되었다. 그러나 공개된 이민호라는 작가의 이면에는 손의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에 대한 갈망과 자신의 자리를 가지지 못한 소외된 인간에 대한 깊은 동질감이 무거운 음영으로 존재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민호가 이민호라는 기표에 맞서는 싸움, 그림자를 낯의 세계로 진입시키려는 싸움, 그리고 더 이상 그림자이기를 멈추려는 싸움이다. 또한 그것이 그가 자신과, 작품과,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다.

                                                    The Theater of Situations with Dissonant Bodies

 

 

 

                                                                                                                                                    By Lee, Enjung,Literary Aesthetician

 

 

Lee Min-ho’s work captures the bodies at odds with the times, such as the anonymous bodies that wander in anxiety and the wrinkled skin and severed body parts that explicitly fill the scene. They are naked bodies that have no individual identity in which no social symbols are found and have nothing save for their shadows. While studying in France, Lee had to face time nothing given burden, disconnected with others, blocking form outside, so there was only one obsession and aspiration to do painting. In this never-ending ordeal of freedom and a vacuum of relations, she clings to Georges Bataille’s conceptions “déclasse” and “informe.”

 

Bataille defines “informe” as follows: “formless” (informe) is not an adjective having a given meaning, but a term that serves to bring things escape from (déclasse) the world, generally requiring that each thing have a form.”1) As “déclasse” means being disqualified, dragging behind social status, or suffering deprivation of position, Lee noticed social symbols of those living in sync with their everyday life in her unstable status as a foreign student and also raised a question concerning the intrinsic form of things through the concept of “informe”(formless). Since then, she has long occupied herself with the body as something raw not allowing any eros nor beauty and body’s naked existence rejecting any cohabitation with the world.

 

Her work patiently strips a body’s identity away to reveal itself and repetitively morphs situations and conditions for the skin and muscle as well as movement and motion to reveal themselves. Each work is a theater of situations in that conditions are minutely altered and bodies are allowed to react to such conditions. One of most important struggle of her is made on the two-dimensional surface of visible things or the color of the skin. While painting has the attributes of brushwork, such as gentleness and warmth, photography generates keen, cold images. As painting moves based on body rhythms, it is faithful to the artist, whereas photography can only address mechanical reference to an object by calculated setting.

 

The confrontation of foreign genres or the confrontation of subjectivism and objectivism cannot help but bring about discord. Lee exposes this discord into the form by continuing fight rather than accepting this discord. She makes all that contacts unstable by containing some rupture of body in raw. In doing so, ruptured form not returning to self-identity address to us that there are bodies deprived social values, disqualified it’s position, inscribed any essence but only open up to the outside as a mere existence.    

 

Lee presents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as <As If I Fight>, which is barrowed from storywriter Jung Ji-don’s short stories book. Fighting with the artist herself, fighting with her work, fighting with the past, fighting with the present, fighting with the world, and fighting with numerous bodies are all the traces of her work over a long time. Since getting attention with photographs series <Portable Landscape>, she has dedicated herself to her work of opening up queer, unfamiliar, uneasy spaces through re-deploying and re-arranging familiar spaces and quotidian objects into the photography. , Just as an action brings about another action and then makes a direction, the medium of photography has been her primary genre and spaces for unfamiliar objects have been her representative works.

 

But behind the public artist’s character, there are her longings for painting done by hand and deep empathy for alienated people deprived their position in the social. In that reason, this exhibition can be thought of as a struggle to confront Lee Min-ho  with Lee Min-ho, a struggle to bring shadows into the light, and a struggle no to be such shadows. And that is the way in which she fights against herself, her work, and the world.

                                                                           "내가 싸우듯이"

 

                                                                                                                                                                            _이민호

 

“물체와 형태가 그들의 원래 문화의 침대를 떠나 지구를 가로질러 흩어지는 분열된 세계의 거주민들, 그들은 수립할 연결을 찾아서 헤맨다.”

                                                                                                                                                                                                               -니꼴라 부리요

 

 

가끔 내가 10년이 넘게 회화작업을 해왔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났던 곳에서 긴 시간을 공부와 그림을 병행하며 활동을 하였었다. 언젠가부터 답습적인 작업행태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 선택한 매체가 사진이었다. 늪에 빠진 회화작업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일탈이 사진이 가진 속성, 그리고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한 리듬과 맞으며 원했던 자유로움을 만나면서 그림을 놓아버렸다. 이제 사진을 통해 지나간 나의 한 시기가 투영된 그림들을 앨범을 들쳐보듯 돌아본다. 매체를 바꾸면서도 단 한 순간도 회화에서 떠나본 적은 없었다. 다만 작업과정이 다른 속도와 리듬감 때문에 다시 회화로 돌아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회화가 가진 매체의 매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듯 돌아가는 것은 더 더욱 그러하다. 내가 나와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긴 시간 동안 그림으로 말하려 했던 것은 “declassé” 즉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몰락한 사람들의 초상이었다. 여러 문학작품이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 표현된 인간군상을 글로 쓰는 대신 시각적으로 표현하려했다. 디지털 매체로 쉽게 접하는 지금과 달리 지나간 그때, 일상에서 쉽게 접했던 지면으로 된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사람들의 사진에서 얼굴부분을 접거나 잘라내고 때로는 신체의 일부분만을 프레임 안에 넣어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만든 다음 그 결과물을 그렸다. 많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유명인들, 배우, 또는 여러 매체 스타들의 사진도 있었지만 이런 작업과정을 거치며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익명의 군중과 똑같이 되어버리거나 불확실한 형태의 몸, 혹은 알 수 없는 물체로 남게 된다. 일반적 기준의 정상적인 형태에서 비정형의 상태로 바뀌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정형화 된 이 사회의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가 추락하거나 소외되는 버리는 과정이다. 죠르쥬 바타이유가 “Document” 에서 ‘비정형은 일종의 자격상실의 한 표현’이라고 말했듯이, 즉 declassé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작업행위에 의해 시스템화 된 사회의 표식인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바타이유는 글에서 도살장에서 절단된 소들의 발과 무용수들의 다리들만을 찍은 사진을 비교하며 유기체[물질]의 절단과 시각적 절단의 비유는 사회적인 한 단면을 말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내가 그림으로 표현한 시각적 프레임으로 절단된 신체의 부위들이 말하는 비정형성을 바타이유에 기대어 얘기했다.

이번 작업의 주제는 니꼴라 부리요가 얘기한 형태의 생산자가 아니라 형태의 가치유지, 그 것들의 역사적, 지리적 전치의 통제를 담당하는 작가로서 텍스트를 읽고 번역하듯 예전의 회화작업을 사진으로 옮겼다. 인물 혹은 신체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과 그 그림을 보고 다시 모델을 세워 같은 포즈를 취하게 하여 사진을 찍고 그림과 새로 작업한 사진을 레이어로 겹쳐서 결과물을 내었다.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장소가 먼,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그렸던, 그래서 그 때 그 곳의 공기와 분위기, 또 다른 인종의 신체 부분 부분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다른 신체와 연결하는 그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만남을 한 화면에 모은 것이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인종과 다른 개성에 의해 빚어지는 불협화음을 함께 모으는, 분열된 세계를 연결하는 일련의 모험이 이번 작업의 키워드였다. 강력한 현재에 비해 과거는 힘이 없다. 현재에 의해 구성된 역사 즉 과거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과거와 싸우는 중이다. 나는 싸우면서 고유한 시간 흐름들을 짜깁기하고 있다.

                                                                                   As If I fight

 

 

                                                                                                                                                                                           by Lee Min-ho

 

  “Inhabitants of a fragmented world in which objects and forms leave their original beds of culture and disperse themselves across the planet,

                                                                                                                            wandering in search of connections to establish.” (Nicolas Bourriaud)

 

 

I now and then forget that I have painted for over ten years. I managed to both study and work in painting for a long year in the other country. Photography is the medium I selected one day to be freer and untrammeled by any conventional manner of creating work. A deviation to save my painting allowed me to enjoy more freedom when it was in sync with the attributes of photography. In the end, I gave up painting. I look back on my paintings reflecting on a period of my work. I had never been away from painting for a second despite the replacement of my main medium. I am afraid of coming back to painting again because the speed and rhythm of photographic work is different from that of painting. Just as it was hard to escape from the magnetism of painting, returning to painting is even more so. It is a process of fighting with myself.

 

What I have long tried to represent in my painting is “declasse,” or portraits of those who are alienated and have lost their social standing or status. I made forays into visually presenting a group of people who were described in other mediums like literature. Because it is not easy to search images as we can do now in digital, I collected images of people in newspapers or magazines and then hiding their identities by folding or cutting out their faces and putting part of their bodies in frames. There were pictures of celebrities, actors, and stars along with ordinary people, through those processes their images became unknown and remained as objects with unidentified bodies or in uncertain forms. Normal forms of standard criteria became abnormal images, ejected from the normal system of our society. As Georges Bataille in Documents, a Surrealist art magazine, argued, “Formlessness is an expression of disqualification,” figures in my paintings became those who underwent a process of “declasse.” They are marginalized from this society, losing their identities by my artistic acts. Bataille mentioned that an analogy between the amputation of an organic body and any visual amputation can be a reference to a social aspect, comparing the feet of cattle severed at a slaughterhouse and those of dancers. In this context, I represent formlessness with body parts cut by the visual frames in my paintings.

 

Topics of works this time is associated not with any producer of form but with any preservation of value of form as Nicola Bourriaud allude. I translate my previous paintings to photographs as if reading and translating a text as an artist govern a historical and geographical displacement. I create a painting from a featuring figure or body, and set up a model as the same pose with paintings, and then take a photo once again. The outgrowth of my work is produced by overlapping that painting and that photograph. I bring time and space together to one scene through the process of linking different physical times and spaces to each other and parts of the body to another race’s body. The seminal part of this work is to collect dissonances caused by different time, space, race, and individuality, by so doing, connect fragmented worlds. The past is weak, compared with the potent present. The past is the history constructed by the present. And yet, I am struggling against the past. I am weaving the streams of time while fighting with the past.